키워드 관련절

    키워드80

  • 출애굽기1장-12장
  • 처음난 것
  • 청결
  •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 수면위에

    수면

  • 스스로 있는 자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소개해야 되느냐고 물은 모세의 질문에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대답하셨다. 이 대답만으로 따지면 하나님의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가 된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대답은 그것이 아니었다. 성경 번역을 그렇게 했을 뿐이다.
    히브리 원어적으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자신의 이름은 영어식으로 하면 주어와 Be 동사 뿐으로 그냥 “I am”이었다. 말이 안 되는 이름이다. 영어로 “I am”이라고 말하는 경우란 단순히 내가 존재한다거나, 어떤 질문에 대한 긍정의 의미밖에 없다.
    . 성경 번역가들은 히브리 원어의 하나님이 말씀하신 자신의 이름 “I am”을 그대로 살리면서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려고 그 이름을 보어의 위치에 넣은 것이 “I am who I am”이 된 것이고 그것을 번역하면 “나는 스스로 있는 자”가 된다.
    혹시라도 오해를 말아야 할 것은 이 부분의 번역 자체가 잘못된 것은 절대 아니다. 가장 훌륭하고도 완전한 번역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을 이 만큼 잘 표현한 말도 없다. 스스로 있는 자란 “홀로 하나”(딤전1:17)이신 분으로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라는 말이다.

  • 만나
  •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덧입고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는 상태에 있는 것이 복

  • 한 하나님
  • 할례

    37. 페리토메(περιτομή) : 할례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2:11) ‘할례’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페리토메’ (περιτομή)이며, 동사형은 ‘둥글게 자르다, 할례를 행하다’라는 뜻을 가지 ‘페리템노’ (περιτέμνω)이다. 그리고 ‘페리템노’ (περιτέμνω)는 ‘주위에, 통해서, 대하여, 가까이’라는 뜻의 전치사 ‘페리’(περι)와 ‘단번에 잘게 자를 수 있다는 뜻에서 더 날까로운’(히4:12)의 의미를 가진 ‘토모테로스’(τομώτερος )의 합성어에서 파생되었다. ‘할례’ (페리토메 : περιτομή)는 남자 성기 귀두 위에 덮여 있는 표피를 제거하는 것이다. 소위 손으로 하는 할례이다. 그런데 골로새서 2장 11절에서는 성도들을 향하여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인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대체 할례가 가지고 있는 성경적 의미가 무었일까? 구약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해 놓은 70인역에서 ‘페리토메’(περιτομή)로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가 ‘물라’(הלומ)이며 동사형은 ‘물’(לומ)이다. 먼저 ‘물’(לומ)은 기본적으로 ‘할례를 베풀다, 자르다, 베임을 당하다, 베어 쓰러뜨리다, 끊어버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알파벳이 가지고 있는 음가에 따라 파자하면 ‘진리와 연합되어 그 진리와 함께 위로 향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명사형인 ‘물라’(הלומ)를 파자하면 ‘진리와 연합되어 그 진리와 함께 살아 가는 실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17:10,11) ‘할례’ (περιτομή) 를 받으라는 말씀은 ‘너희에게 있는 생명을 완전히 끊어버리라’는 말씀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면서 ‘너희 안에는 생명이 없으며 너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생명은 진짜 생명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생명은 내가 주겠다’라는 언약의 말씀도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생명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선악의 주체가 되어 생명아닌 것에 목숨걸고 살아가는 죽음 그 자체인 나를 살리려 약속의 후손 예수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가 되어 언약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의 내가 아닌 그리스도로 살게 하신 것이다(갈2:20). 언약의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처럼의 내가 다나토스의 죽음으로 완전히 죽어 버린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할례 받았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할례’ (περιτομή) 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따라 육이 죽고 영으로 살아 진리와 연합되어 그 진리와 함께 살아 가는 성도의 실존인 것이다.

  • 유교병
  • 천국
  • 죄인
  • 인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의 형체로 거하시는 분.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인치신자닌라
    우리를 신의 아들로 살아가도록 재건축하게 세워주시는 분

  • 심판
  • 오만
  • 애굽
  • 진리

    진리는 변하지 않는 최상의 가치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예수님의 삶이 진리이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진리이다.

  • 창조의 하나님
  • 기록된 말씀

    기록된 말씀밖으로 나가면 잘 못될 수도 있는 자기의 개인의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 창조

    창조는 ~~

  • 십자가

    48. 스타우로스(σταυρός): 십자가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십자가’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스타우로스’(σταυρός)는 위로 향한 막대기, 기둥을 말하는 ‘곧은 기둥’, 최고형을 집행하는 도구로서 ‘십자가’, 상징적으로 ‘죽음의 위협에 노출됨, 자기부인’ 그리고 함축적으로 ‘그리스도의 속죄’라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의 ‘십자가’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당했던 그 당시 최고형을 집행할 때 사용한 십자가’를 말하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구원의 능력, 기독교인의 자랑의 상징물’로써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십자가’ 자체가 실제로 어떤 능력을 가진 것처럼 오해하여 우상(εἴδωλον)처럼 떠받들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십자가’(스타우로스 : σταυρός)라는 단어는 알게 모르게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모른 채 왜곡되어 사용되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십자가’로 불리워지는 ‘스타우로스’(σταυρός)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그 단어의 유래가 되는 ‘히스테미’(ἵστημι)라는 단어를 살표 보아야 한다. ‘히스테미’(ἵστημι)는 기본적으로 ‘서게 하다, 두다, 놓다, 세우다, 옆이나 가까이 서다, 확고한 마음을 가지다, 권리를 포기하지 않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히스테미’(ἵστημι)가 가지고 있는 ‘서다’라는 의미는 수동태와 수평적인 위치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배치하다, 세우다, 놓다, 정박하다, 수립하다’라는 뜻의 ‘티데미’(τίθημι)와 비교하여 능동적이며 수직적 위치로의 ‘세워짐’의 말하는 것이다. 좀더 부연 설명하면, 하나님의 창조 (בָּרָא)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배열해 놓은(티데미 : τίθημι)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 (호 코스모스 : ὁ κόσμος)의 모든 것들을 통하여 그 속에 담겨진 내용 즉, 말씀으로 창조된 만물 가운데 숨겨진 하나님이 마음인 말씀을 깨달아 그 언약의 말씀으로 굳게 세워지도록(히스테미 : ἵστημι)하는 것이며, 우리를성전 (אב) 삼으시는 것이고(고전3:16). 성도에게 있어서 ‘스타우로스’(σταυρός)는 더 이상 어떤 것을 상징하는 상징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며, 그 말씀 앞에 선악의 주체로서 하나님 처럼의 내가 죽는 자기부인의 자리이고 더 나아가 그 말씀이 되어 말씀이신 그리스도로 사는(갈2:20)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더이상 예수의 ‘스타우로스’(σταυρός)가 아닌 반드시 말씀이 되어 자기 ‘스타우로스’(σταυρός)를 져야 하는 것이며 그가 바로 땅적 존재에서 하늘적 존재가 된 자, 구원 받은 자가 되는 것이다.

  • 하나님
  • 빈 들

    광야. 육의 속성을 광야와 같이 황폐화시켜서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깨어져 부활의 영을 만나는 곳. 이곳은 세상과 구별된 곳이다. 그곳은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곳이다.
    왜 빈 들인가? 빈 들에서만이 심령이 강해질수가 있었다. 세상의 소리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두려움을 준다. 세속의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주님은 심령이 강한 자를 쓰신다. 빈 들에 있는 자는 가히 총독이나 제사장들에게 “회개하라” 외칠수 있는 강심장을 받게 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 만물

    만유와 만물은 비슷한 말

  • 공허하며
  • 어둠
  • 아버지
  • 화평
  • 감정
  • 성령
  • 손의 권능
  • 독생자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외동아들의 뜻이 아니라 스스로 나신, 스스로 홀로 존재하신,
    모노게네스 (μονογενής)
    독생자(τὸν υἱὸν τὸν μονογενῆ)를 단순히 국어사전적 의미로 ‘하나님의 외아들’로 이해해서는 안되며 ‘유일한 원인이 되는, 유일한 시작과 완성이 되는 의미에서의 유일한 존재, 하나만 가진 자의 뜻으로 이해해야 하다. 뿐만 아니라 독생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 한마음을 가진 자, 한마음이신 자’로서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모노게네스 (μονογενής)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이신 하나’(요1:14)이며, ‘시작이 되시고 완성이 되시는 하나님 자신인 하나’라는 의미이다.

  • 말씀하시는 사역
  • 통일하시고

    통일하시고는 영어의 through에 해당한다.

  • 심령
  • 인도
  • 궁창
  • 예배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이 영이다. 우리의 영혼으로부터, 우리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모하는 심령으로 드리는 예배.

  • 생각

    하나님의 영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계신다. 여기서는 생각

  • 다스림
  •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 의지
  • 기업
  • 나타내심을
  • 여호와
  • 의인
  • 형통
  • 율법

    율번의 정신은 사랑이요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 이 율법이 없으면 죄밭에 뒹굴게 된다

  • 말씀

    하나님이 바로 말씀이시다. 요한복음 1장1절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우리의 심령에 내주하고 계신다.
    이어서 3절에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땅이 혼돈하고

    아직 형태가 잡히지 않은 상태로 '형태가 없고'. 보통 이 혼돈이라는 말을 카오스 chaos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 숨기시고
  • 주재
  • 만유
  • 권능

    42. 뒤나미스(δύναμις ) : 권능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권능’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뒤나미스’(δύναμις )는 ‘할 수 있다, 가능하다, 힘이 있다’는 뜻의 ‘뒤나마이’(δύναμαι)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강한 힘, 이적적인 능력, 전능한 일’이란 의미이다. 보통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능력(δύναμις )을 얻기위해 기도하곤 한다. 그러나 이 단어가 쓰여진 용례를 보면 숨겨진 속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령(말씀)이 임하면 권능(δύναμις )을 받아 말씀의 증인이 되며(행1:8),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그러한 권능(δύναμις )이 어디서 났는지 사람들이 놀라고(마13:54, 막6:2),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δύναμις )이 충만하여 성령으로 말하며(행6:10)… ‘권세’ (엑수시아 : ἐξουσία)가 ‘하나님의 말씀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면, ‘권능’ (뒤나미스 : δύναμις )은 ‘하나님의 말씀을 넘겨주는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헬라어 ‘뒤나미스’( δύναμις)가 히브리어로는 ‘코아흐’(כח)라고 하는데 이를 파자하면 ‘완성된 진리로서의 생명을 넘겨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데서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9:1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말씀)을 온 천하에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 모세를 세우면서 능력(כח, δύναμις)을 보여주신다. 모세가 받은 능력은 다름 아닌 말씀을 전하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성령(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나의 말(율법)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품을 수 있는 권세(ἐξουσία)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능력(δύναμις)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능력(δύναμις) 행함이란, 눈에 보이고 육신을 만족케하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의미에서의 행함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전해준다는 의미에서의 행함을 말하는 것이며 그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날마다 능력(δύναμις)행함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 긍휼
  • 보물
  • 생명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 하나님의 형상
  • 악인
  • 38.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 ) : 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6) ‘의’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 )인데, 넓은 의미에서 ‘의,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조건’, 좁은 의미에서 ‘각자에게 책임으로 주어진 정의와 도덕’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 )의 형용사형은 ‘의로운, 신의 법에 순종하는, 거룩한, 흠없는’의 뜻을 가진 ‘디카이오스’(δίκαιος)인데 이 단어는 ‘옳은, 공의, 심판, 처벌, 복수, 옳바름’의 뜻을 가진 ‘디케’(δίκη)에서 파생되었으며, ‘디케’(δίκη)는 ‘보여주다, 증거를 제시하다, 말이나 가르침으로 나타내다’라는 의미를 가지 ‘데이크뉘오’(δείκνυω)에서 유래되었다. 성경은 ‘의인(δίκαιος)은 없나니 하나도 없나니’(롬3:10)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조건으로서의 ‘의’ (δικαιοσύνη )는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의’ (δικαιοσύνη )속에는 ‘공의와 심판과 처벌’이라는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죄인인 인간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닌 것이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의’ (δικαιοσύνη )의 좀더 구체적인 성경적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이 단어가 번역된 히브리어를 살표보아야 한다. 70인역에서 ‘의’ (δικαιοσύνη )로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가 ‘쩨데크’(צךק)인데 이 단어는 ‘올바르다, 의롭게 하다, 의를 나타나게 하다, 정의를 행하다 또는 가져오다’라는 형용사 ‘짜다크’(צךק)에서 유래 되었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צךק )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시119:137)는 말씀에서 하나님 그분이 바로 ‘의’(צךק)이심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죄가 없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완전하신 분이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언약의 관계에서 ‘의’(צךק)이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의를 행하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의’ (δικαιοσύνη )이신 하나님께서 말씀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셨으며(요1:14),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언약을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이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또한 ‘쩨데크’(צךק)를 파자하면, ‘잡아서 구분하여 죽이고 살리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도의 ‘의’ (δικαιοσύνη )’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안에서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나님 처럼의 ‘나’를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그리스도’로 살게 하시는(갈2:20)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 하나님아들
  • 운행하시니라

    운행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으나 번역이 좀 어렵다. 동사원형이 라하프. 메라헤페트 ... 을 품다 / ~위에 날다의 뜻이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품어주신다.
    이 말은 원래 독수리가 날개를 펴서 자기 새끼를 보호하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 애통
  • 육신
  •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영은 영원히 살아숨쉬는 숨결. 성령하나님을 말한다. 히브리어 루아흐 . 하나님의 영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계신다.

  • 빛과 어둠
  • 은혜
  • 부활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 : 부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 ‘부활’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아나스타시스’ (ἀνάστασις)는 ‘다시 일어서기, 죽음에서 부활, 자리에서 일어남, 죽음에서 일어남, 올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부활’이라는 단어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 쇠퇴하거나 폐지한 것이 다시 성하게 됨 또는 그렇게 함, 십자가에서 못박혀 세상을 떠난 예수가 자신의 예언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죽음에서의 부활을 믿으며 소망하는 소위 부활신앙을 가지고 오늘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부활’의 의미는 국어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다. ‘부활’로 번역된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가 유래된 동사형인 ‘아니스테미’(ἀνίστημι)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아니스테미’의 뜻은 ‘다시 일어나다, 똑바로 서다, 죽음에서 일으키다, 나아가다, 자리에서 일어나다, 들어올리다’인데, ‘한 가운데로, 중앙에 , 의 복판에, 사이에’의 뜻을 가진 ‘아나’(ἀνά)와 ‘서다, 이룩하다, 두다, 세우다, 옆이나 가까이 서다, 확고한 마음을 가지다, 권리를 포기하지 않다’의 뜻을 가진 ‘히스테미’(ἵστημι)의 합성어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정리하면, ‘부활’(ἀνάστασις)의 성경적 의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통하여 그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인 말씀을 깨달아 그 말씀으로 똑바로 서는 것, 선악의 주체가 되어 두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영원한 죽음의 삶에서 한마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진리의 영이신 성령(말씀)을 통하여 진리(말씀)의 완성이라는 의미를 가진 ‘다나토스’(θάνατος)의 죽음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나는 부활이다’(Ἐγώ εἰμι ἡ ἀνάστασις)라는 고백은 ‘나는 말씀이다’((Ἐγώ εἰμι ὁ λόγος)라는 고백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람인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말씀)을 가진 자이며(롬8:9), 하나님의 성령(말씀)이 거하는 성전이고(고전3:16) 이미 부활(ἀνάστασις)의 삶을 사는 자인 것이다.

  • 메라헤페트

    운행하시니라 ‘메라헤페트’인데 ‘라하프’에서 온 말이다. 알을 품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영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담고 있는 무저갱의 물들인 쌍의 얼굴들을 닭이 병아리를 부화시키기 위하여 알을 품고 있듯이 품고 계시는 것이다. 하늘의 물로 이끌어 올리기 위해서다.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인간의 마음토대를 하늘의 물로 계몽시켜 이끌어 올리기 위해서다. 그래야 하나님의 생명이, 사상이, 형상이 병아리가 부화되듯 거듭나게 되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영이 품어야한다. 하나님의 영은 생명의 머리로 바꾸는 영이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인 무저갱의 머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의 머리로 바꾸는 영이다. 하나님의 영이 무저갱을 품어야 무저갱의 머리가 깨지고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의 머리로 바꾸어지게 된다. [Reference] : 한국히브리신학원, 「히브리어 난해구절 지상강좌 - 히브리어 지상강좌 (20) -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한국히브리신학원」 http://www.koreahebrew.com/?mid=gtcolumn&document_srl=740.

  • 영생
  • 거룩
  • 한 하나님
  • 흑암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창 1:2) 여기서 '흑암'은 단순히 빛에 대칭되는 어두움의 개념이 아니라 창조 이전 빛이 없는 상태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공동 번역성경은 이를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로 번역하였다. 왜냐하면 '깊음'에 해당하는 원어 '테홈'은 때로 '깊은 바다'(시 42:7, 겔 31:15)나 지하 물의 근원지(7:11; 시 78:15)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 태초

    태초란

  • 광야

    광야는 헤쳐나가는 곳이다. 이 어둠을 제거해야 우리가 걸어야 할 인생여정을 인도 받는다. 예수님, 세례요한, 엘리야 등이 거쳐간 광야를 모아본다. 인간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살 수 없음을 뼈저리게 가르쳐주 장소이다.
    광야는 어떤 곳인가? 물과 먹을 것이 없는 곳이다. 낮에는 한여름의 무더위보다 더 찌고 밤에는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광야 생활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무려 40년간이 생존해 내었지 않는가? 하나님이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붙들고 있지 않았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